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최초 여류작가는 김명순입니다. 1911년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잡지 청춘에서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로 당선되어 등단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문단 내에서 소외를 당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1924년 11월 <신여성>이라는 잡지에서 김기진 평론가가 쓴 <김명순 씨에 대한 공개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이 시에 쓰인 것과 같이 착한 처녀인지 아닌지는 내가 보증할 수 없으나 어쨌든 이 시는 조선이 낳아놓은 드문 여성의 시이요, 이 시의 작가는 그 드문 문학 여성 중 한 사람인 김명순 씨이다. 김명순의 시를 피부에 비하여 말하면 남자를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하는 기름기 있고 윤택하고 보드랍고 폭신폭신한 피부라고 하느니보다도 오히려 육욕에 거친 윤택하지 못한 지방질은 거의 다 말라 없어진 퇴폐하고 황량한 피부가 겨우 화장분의 마술에 가려서 나머지 생명을 북돋워 가는 그런 피부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분 냄새'가 나는 시의 일종이다. 누가 보든지 순실한 처녀 혹은 여자가 정성껏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거친 생활을 계속하는 타락한 여자가 새로운 마음을 고쳐먹고 거울 앞에 앉아있는 그런 무드가 많이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김명순은 <김기진의 공개장을 무시함>이라는 글을 <신여성> 잡지에 보냈습니다. 이 잡지는 김명순의 반박문을 아예 실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생명의 과실>(여성 문인이 낸 최초의 창작집. 1925)을 출간합니다. 이다음 문단 생활을 하지 않고 매일신보의 신문기자로 활동합니다. 또한, 그녀는 가난에 시달렸어도 끝까지 친일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