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에서 위그노 전쟁이라는 것이 있는데 위그노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프랑스 역사를 접하다보면 위그노전쟁이라는 전쟁을 알게 되었는데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역 명인가요 아니면 집단 사람의 명칭 인가요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전통적으로 로마가톨릭(구교)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남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던 신교도를 위그노(Huguenot)라 불렀다. 이들이 빠르게 성장하여 종교적 영역을 넘어 정치세력화 되기 시작함에 따라 구교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이러한 신구교의 정치적 갈등이 프랑스 궁정 내부문제와 국제적 문제와 겹쳐지며 결국에는 프랑스 최초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1562-1598)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전쟁은 신구교 양진영 모두에게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당시 유럽의 악화된 경제 사정, 전염병, 국제적 갈등이 더해지면서 프랑스 국토를 심각하게 황폐화 시켰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한 폐해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프랑스에서는 정치파(politique)라고 불리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탄생하게 된다. 이들은 종교를 떠나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며 이후 왕권 강화와 질서 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는 훗날 프랑스가 영토국가의 기틀을 갖추고 절대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밑바탕이 된다.
위그노 전쟁의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구교의 신교탄압은 프랑수아 1세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앙리 2세로 이어지게 된다. 앙리 2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샤를 9세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고, 어머니이자 앙리 2세의 부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s,1519-89)가 섭정을 하게된다.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그녀는 프랑스 내부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가톨릭 귀족 가문인 기즈가(Les Guise)와 결탁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는 위그노인 나바르의 왕, 강한 가톨릭 성향의 기즈가(Les Guise), 온건가톨릭 교도인 몽모랑시 가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가톨릭과 위그노들의 대립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이 혼란의 와중 반신교주의 성향이 강했던 기즈 공작이 먼저 1562년 예배를 올리던 위그노들을 기습 공격하고 이를 시작으로 8차에 걸친 위그노전쟁이 시작된다. 가톨릭과 위그노들은 서로를 이단시하고 폭력을 가했다. 3차전까지 치른 뒤 양측은 평화협상을 벌여 합의를 이루었으나 정부가 위그노들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함에 따라 격렬한 갈등은 다시 시작된다. 결국 1572년 8월 24일 성바르톨로메오(St. Bartholomew)의 축제일(그날 카트린의 딸과 나바르 왕의 결혼식 열림)에 기즈공작과 카트린이 결탁하여 축제에 참석한 위그노 지도자들과 위그노들을 대량 학살(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한다. 이에 격분한 위그노들은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고 신교와 구교의 격렬한 싸움은 재개된다.
하지만 샤를 9세가 사망하고 신교에 대해 다소 너그러웠던 앙리 3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 했다. 이후 앙리 3세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위그노의 지도자격인 나바르의 왕이 앙리 4세로 왕위에 오르게된다. 그는 신교와 구교의 갈등을 해결하고 혼란한 사태를 종식시키고자 하였다. 앙리 4세는 1592년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화해를 도모코자 하였으며 1598년에 낭트칙령(The Edict of Nantes)을 발표함으로서 36년간을 끌어오던 위그노 전쟁을 종결 시켰다.[네이버 지식백과] 위그노 전쟁 [Huguenots War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위그노는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스위스 사람을 뜻하는 독일어 아이트게놋세의 프랑스어 식 사투리인 에뇨와 제네바의 동맹당 당수 브장송 위그의 성을 합친것으로 본래는 멸칭이었습니다.
개신교가 그리스도교가 아니며 개신교 지도자 개인을 추종하는 집단이라 모욕을 주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위그노는 어감이 좀 안 좋죠?
프랑스는 오랜 카톨릭의 본산이고, 교황을 배출한 나라였죠.
아니 교황을 만든 킹메이커 나라입니다.
그런데 개신교도들이 생겨났죠.
그래서 경멸하는 의미로 '위그노'라고 불렀습니다.
그냥 그렇게 불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에서 개신교 신자들을 위그노라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자주 화형당했고, 집단학살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다 프랑스 왕위에 오른 사람이 개신교를 지지하기도 하고,
오히려 그 지지가 반대파로 하여금 성바돌로매 축일에 참석한 손님들을 다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게 만들기도 했고요.
프랑스대혁명까지 탄압은 이어졌고,
1787년 11월 7일, 루이16세의 베르사이유칙령으로 자유를 얻었으나, 그 시기에는 이미 위그노라는 존재 자체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죠.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