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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어항상영후니
기대어항상영후니23.08.29

조선시대 임금은 신분이 미천한 계급과 혼인이 가능했나요?

조선시대 왕 영조가 무수리와 숙종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당시에 천민이랑 왕이 혼인을 할 수 있었나요? 어떻게 이런게 가능했을까요? 신분제 따위는 왕이라는 신분의 힘으로 묵사발시킬 수 있었던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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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녹수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장녹수는 왕의 선택을 받아 흥청으로 발탁되어 궁궐로 들어가게 됩니다.

    장녹수에게는 천민 출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연산군은 장녹수가 입궁한 해에 정식 후궁인 종4품 숙원(淑媛)으로 봉했습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게 기생 출신이 후궁이 된 것은 장녹수가 전후무후한 사례일만큼 엄청난 파격이었다고 합니다.

    왕이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권한이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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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이 천한 신분이랑 결혼 하는 게 가능 한게 아니라 무수리나 궁냐로 들어 온 여자를 후궁으로 삼은 것 입니다. 후궁이 되서 아들을 나으면 대군은 아니더라도 군이 될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정실 세자가 없으면 세자도 될수 있는 것 입니다. 세자가 되면 다음 왕위도 받을수 있는 것 이구요. 영조 뿐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 왕중 첫 후궁 출신의 왕은 선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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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네, 아무리 무수리나 상궁 등이었어도 소위 왕이 마음에 들어하면('승은을 입으면') 결혼할 수 있었고, 이렇게 되면 소위 후궁이 되어 권력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조의 어머니는 최씨 성을 가진 무수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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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었습니다. 왕은 최고위 신분인 왕족이었으며, 무수리는 가장 낮은 신분인 천민에 속했습니다. 따라서 왕과 무수리의 혼인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영조의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숙종의 첫 번째 부인인 인경왕후가 1680년에 사망하자, 숙종은 후궁을 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숙종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후궁을 들여야 했습니다.

    숙종은 여러 후궁을 들였지만, 후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숙종은 무수리 장씨를 후궁으로 들였습니다. 장씨는 숙종의 총애를 받아, 영조를 낳았습니다.

    영조의 출생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왕이 천민과 혼인했다는 것은 신분제도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숙종은 영조를 왕자로 인정하고,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숙종의 결정은 신분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숙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경종은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왕권을 강화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경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영조는 신분제도를 개혁하기보다는, 왕권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영조의 출생은 신분제도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조의 출생은 조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조선 사회의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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