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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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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병자호란때 인조는 왜 강화도로 가지않고 남한산성으로 간것인가요?

병자호란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갔잖아요, 그런데 왜 강화도로 가지않고 남한산성으로 간것인가요? 몽골침략기, 정묘호란때는 모두 강화도롤 피신을 해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고, 강화도는 방어에 최적화되어있는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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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23.04.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한산성에 간 이유는 남한산성은 전란을 대비하여 만든 성입니다. 그래서 왕이 피난 할때를 대비하여 식량과 무기를 항상 준비를 한 성입니다. 그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조금만 버텼으면 곧 겨울이 왔고 그러면 청나라군도 철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청나라는 적이 조선만 있는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광해군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인조반정 공신들이 남한산성에 있는 최고급 쌀을 다 빼돌려 버렸답니다. 왕이 가보니 당장 먹을 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조가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조도 공신들이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예측을 못했겠죠. 그리고 병자호란때는 의병이 없었습니다. 선조가 공을 세운 의병장들을 미워했거든요. 자기 권력을 빼앗을까봐. 곽재우 장군은 엄청난 공을 세우고도 왕의 미움을 받으니말입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금에서 청나라를 세운 홍타이지는 굉장히 전술에 밝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이 당연히 강화도로 피신 할 것을 알고 있었고 조선 지휘부가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300의 기병으로 신속히 먼저 국경을 넘어 조선의 지휘부가 피신할 시간을 주지 않고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아 버립니다. 그래서 인조 및 신하들은 강화도로 들어 갈 수 없었고 급하게 차선책으로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항전을 하게 됩니다.

    국경에서 도성 까지 조선군은 그깟 300명의 기병을 막지 못했냐고 반문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조선의 전술은 산성으로 백성들까지

    들어가서 방어하고 청야전술로서 적을 막는 개념이었는데 청군은 그 산성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서 바로 도성으로 공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이에 인조는 급히 강화도로 피신하려 하였으나 산성에 있는 조선군은 청의 선발대가 지나치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방어선이 산성 단위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길목을 막는 개념이 아니었고 오늘날의 전선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홍타이지의 전략은 맞아 떨어졌고 그들은 남한산성에서 본대가 포위하고 홍이포로 압박하는 전술로 조선의 항복을 받아 내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인조도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했으나 청군이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막아버려서 당시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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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한양에 도달했습니다. . 인조는 14일 밤에 강화도로 피하려 했지만 청군에 의해 길목이 봉쇄 되어 소현세자와 신하들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다운 전쟁 없이 청군의 파죽지세로 내려 와서 어쩔수 없이 남한 산성으로 피신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