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의 남하를 피해서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후방이 안정된 청은 압록강을 건넌 지 불과 14일 만에 개성에 도착합니다. 조선은 청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지 못했습니다.
인조는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했는데 청군의 남하 속도가 너무 빨라 남한산성으로 갔습니다.
성에서 버티면서 장기전을 벌일 요량이었지만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조선군 내부에서 식량이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조선군은 1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식량도 40일 만에 바닥납니다.
명나라에 구원 요청을 했으나 이미 명나라도 꺼져가던 촛불.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조선은 항복하게 됩니다.
인조는 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의 서문으로 나가 한강 동남쪽에 위치한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갖춥니다. 이게 유명한 삼전도의 굴욕이었습니다. 청은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하여 신하들을 인질로 잡아 청으로 돌아갑니다. 조선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공포보다 세자와 세자빈이 인질로 끌려갔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