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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8.23

조선시대에 무당은 천시되었는데 그래도 국가행사에 무당이 하는 일이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무당은 천시되는 직업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비록 이들이 천시되긴했지만 국가의 행사가 있을때 이들이 불려가서 일을 하기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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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리학이 근본인 나나로 무당에 대한 박해가 심화되고 천민으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음탕한 것으로 규제되었습니다.

    흑주술과 무고를 행하고 천하의 불쌍놈으로 노비, 중 ,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에 속했고 무당은 도성내 거주를 금하였고 강을 세우면 세금을 매겨 신당세, 무업세를 징수, 필요에 따라 관아 및 군영에 무당을 배속해 의료행위를 하게 했고 남자 무당의 경우 군영의 취타수로 편제되어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로 넘어오면 팔관회와 연등회가 국가적 종교행사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행사는 겉으로는 불교행사인 것처럼 보이나 그 내용은 기실 예로부터 전해오던 무(巫)의 축제전통을 이은 것입니다. 양자가 겉으로는 불교적 이름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은 모두 호국적 시조제·기복제의 성격을 지니며 군신(君臣)과 백성이 음주가무하고, 무당이 천신·용신·산신 및 하천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등 토속적 신앙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간 서긍(徐兢)은 자신이 관찰한 바를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팔관회는 고구려의 동맹제(東盟祭)에서 유래한 것"이라 밝혔을 정도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조선시대로 오면서 급변하고 맙니다. 초기부터 굿을 단속하는 법을 만들어 세금을 거두고, 무당을 한양에서 쫓아냈으며 급기야 무당은 노비·승려·백정 등과 함께 사회 최하층인 8천(賤)의 하나로 규정되는 등 박해가 연이었습니다. 고려의 국가적 제례인 연등회와 팔관회를 낭비로만 본 까닭도 있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유교 이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세계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지배층이 종교를 핑계로 구시대의 세력들을 몰아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목표가 정말로 무당 천대에 있던 것이 아니어서 왕실에서도 19세기 말까지 꾸준히 굿을 벌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천민으로 떨어진 무당에 대한 사회적 천시는 매우 심각했고, 이에 함께 배척당하던 불교와의 융합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석가모니·무학대사·삼불제석 등이 주요한 신령으로 모셔지고 불교 역시 무(巫)로부터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녀는 신을 섬기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능력과 병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기때문에 의사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무당은 예언과 치병의 역할을 하여 민중 속에 스며들어 갔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리학 국가인 조선 시대에는 무당을 음탕 하고 요사스러운 것으로 규정 하고 천시하고 규제를 가했습니다. 도성 내 무당이 거주하는 것 조차도 금지 할 정도 였고 혹시라도 무당이 당을 세우면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그것을 차별 하였다고 합니다. 국가행사에 무당이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선시대에는 무당이 천시되는 직업 중의 하나였지만, 국가의 행사가 있을 때 이들이 불려가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의 즉위식이나 대규모 제사 행사에서 무당은 무당춤을 추거나 제례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무당은 왕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굿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무당이 천시되는 직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행사에 참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무당이 민간신앙의 주체였고, 그들의 주술적인 능력이 신성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가의 중요한 행사나 의식들은 주로 관료나 사대부, 무신들에게서 주도되었고, 국가 행사와 관련하여 무당들의 참여가 기록된 경우는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무당들이 예방 또는 제사와 관련된 행사에서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당들은 민간인들 사이에서 종교적이거나 예방적인 목적으로 활동하며, 국가적인 의식보다는 일상적인 사건들에 더 관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