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관은 종6품으로 이름에 '따를 종'이 들어간 것에서 지휘관의 부관참모(비서) 업무에 가까운 일을 했다. 양반 중 무반에 해당되며 대부분 무과에 처음 급제한 사람들 위주로 이 관직을 받았다. (조선 초중기 한정, 후기에는 관직 수보다 무과 합격자가 더 많아져서 바로 종사관이 되는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중국에 보내던 하정사(賀正使)나 일본에 보내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수행 하던 삼사(三使)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 전기 부경사행(赴京使行)의 기록관은 서장관(書狀官)이라고 하였으며, 조선통신사에서는 문관 5·6품의 직계로 홍문관교리의 직함을 임시로 받았다고하며 종사관의 직함을 요즘 직책으로는 경찰 계급으로 경감/경정,군인 계급으로 대위, 공무원 직급으로는 사무관급 정도라고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군영에서 종사관은 주장 (主將), 즉 지휘관 을 보좌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휘관이 장군 이라고 하면 종사관은 종 6품의 벼슬로서 장군을 보좌 하고 부하들을 통솔하는 중간 역할의 관리 이며 지금의 부관 참모 정도 입니다.
중국에 보내던 하정사(賀正使)나 일본에 보내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수행 하던 삼사(三使) 가운데 하나이다. 직무는 사행중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를 보좌하면서 매일 매일의 사건을 기록하였다가 귀국 후 국왕에게 견문한 바를 보고하는 것이다. 한편 일행을 감찰하고 도강할 때에 일행의 인마(人馬)·복태를 점검하는 행대어사(行臺御史)를 겸하였다.
조선 전기 부경사행(赴京使行)의 기록관은 서장관(書狀官)이라고 하였으며, 정4품에서 6품 사이의 관원이 1품상위로 결함 되었다. 조선통신사에서는 문관 5·6품의 직계로 홍문관교리의 직함을 임시로 받았다. 1442년(세종 24) 신숙주의 예를 보면 대간의 결함을 받아 한 직급 높여 받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후 1606년(선조 39) 9월 일본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칭호를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하면서부터 서장관의 칭호가 종사관으로 바뀌어 통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