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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팬더곰238
귀여운팬더곰23823.12.10

강감찬 장군의 살수대첩에서 실제로 신화라는 얼마나 죽었나요.?

안 감찬 장군에 살수대첩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 공적 중에 하나로 치아를 받고 있는데 실제로 30만의 수나라 병사가 물에 익사하여 사망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맞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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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병사 30만이 익사하여 사망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과장된 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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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수나라군의 전사자는 30,36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자료에서는 8만 명, 10만 명, 12만 명 등 다양한 숫자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나라군의 병력 규모 역시 기록마다 상이하며,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300만 명까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어 정확한 사망자 수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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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질문이 섞여 있는 듯 합니다. 우선 살수대첩은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당나라 우중문 우문술과 싸워서 살수(청천강유역으로 배웠으나 최근에 요녕성 혼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짐)에서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대첩을 말하는 것이고 고려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3차 침입을 단행한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맞아 귀주(평안북도 구성시)에서 섬멸하여 살아 돌아간 이는 수천에 불과했다고 전합니다. 귀주대첩입니다. 둘 다 물을 막아 수공을 펼쳤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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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공이었다는 것은 허구 입니다.

    역사상 막았던 물길을 터뜨려 적의 진군을 방해한 사례는 있으나 완전 무장한 300,000명의 대병력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인위적인 수공은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삼국사기, 수서, 당서 등 1차 사료에 살수대첩이 수공이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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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 장군은귀주대첩이며

    살수대첩은 을지문덕이 승리한 전쟁으로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30만명이 죽었다는 것은 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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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처음 요하에 이르렀을 때의 거란의 병력은 305,000명이었으나 그 중에 요동반도로 다시 돌아온 자는 겨우 2,700명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많은 군수물자와 공성병기는 모두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으로 추측 하건데 30만 대군이 거의 다 죽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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