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는 수나라의 대규모 군대가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공격하려다가 살수(오늘날의 청천강)에서 을지문덕의 기습에 의해 대패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홉 군이 처음 요하에 이르렀을 때의 병력은 305,000명이었으나 그 중에 요동반도로 다시 돌아온 자는 겨우 2,700명이었습니다. 다만 <삼국사기>, <수서>, <당서> 등 1차 사료 어디에도 살수대첩이 수공이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1931년 조선일보에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최초로 살수대첩이 수공이라는 서술이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