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성남의 별장에서 지내면서 『낙도교거집』과 함께 지었다고 합니다. 현존하지 않아 서지사항과 내용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강감찬이 구주대첩을 이끈 무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만년에 문집을 저술했음은 주목되는 일입니다.
강감찬은 금주(경기 시흥)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현종 때 거란 군대를 물리치고 개선하자 왕이 친히 영파역(황해도 우봉)에 나아가 연회를 베풀고, 장군과 병졸들에게 금화를 손수 머리에 꽂아주었다고 합니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속하여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체격이 왜소하고 외모가 못생겼으나 나랏일을 훌륭히 수행하였습니다. 송나라 사신이 그를 보고 “문곡성(글재주가 높은 사람을 칭찬하는 말)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더니 지금 여기에 계셨군요.”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그와 관련된 전설과 설화는 『고려사』 외에 『고려사절요』 권3의 「강감찬 졸기」(현종 22년 8월)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0의 경기도 금천현 인물 조에 자세히 실려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