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에 주도한 혁명파 신진 사대부는 15세기 문물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이들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돕고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들은 왕도 정치 이외에도 패도를 인정하고, 경학과 함께 사장을 중시하지만 권력을 독점하면서 부패합니다.
반면에 조선 건국을 거부한 온건파 신진 사대부는 향촌에서 사학을 통해 후학을 교육하며, 왕도 정치와 경학을 중시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서원과 향약을 통한 향촌 자치를 중시하였습니다.
성종은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3사를 중심으로 사림을 등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림은 훈구 세력의 독점을 비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