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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30

조선 시대 궁녀들은 절대 결혼을 하지 않았나요

조선 시대 사극을 보면 수많은 궁녀들이 등장하는데요이 사람들이 왕이 선택하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인가요 그러면 수많은 궁녀들이 처녀로 한평생을 보낸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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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 안에서 궁녀로 사는 동안에는 결혼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궁 밖으로 나갈 때 즉 늙거나 가뭄으로 인해서 궁궐 밖으로 방출을 당할 때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궁녀는 원칙적으로 종신제였지만, 특별한 경우, 즉 이들이 중병이 들었을 때, 가뭄으로 궁녀 방출이 결행될 경우(단, 젊은 궁녀), 모시고 있던 상전이 승하했을 경우 중도에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가뭄으로 인한 궁녀 방출은 가난으로 국가에서 결혼 못한 노총각에게 결혼 비용을 지급하는 의미와 같은 이치이다. 젊은 궁녀가 헛되이 왕권의 그늘에서 늙어 가는 부당성을 국가에서 인정한 증거입니다. 결국 이러한 궁녀 제도는 절대군주국가 시기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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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에서는 왕의 예비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여성으로 여겨져 정조를 지켜야했습니다.

    왕도 자신만의 이상형도 있고, 체력에도 한계가 있어 궁녀 대부분은 숫처녀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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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녀들은 이미 궁에 들어 올 때 왕과 결혼을 한 몸으로 들어 오는 것 입니다. 다만 합궁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궁녀는 오로지 왕의 여자인 것 이지요. 궁녀들은 출궁 하기 전까지는 절대 결혼을 할수 없었고 혹시라도 다른 남자와 마음이 맞으면 목숨을 걸고 도망 가서 살지 않는 이상 결혼은 불가능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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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녀의 뜻>

    일반적으로는 상궁과 나인만을 의미하지만, 나인들과 그 아래 하역을 맡은 무수리·각심이·방자(房子)·의녀(醫女)·손님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 궁녀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비롯되었다. 넓은 의미의 궁녀에 포함되는 무수리는 각 처소에서 막일을 담당하는 여인들이다. 또 각심이는 상궁이 비번 날 살게 되는 개인의 처소에서 부리던 가정부·식모·찬모 등의 총칭이다. 이들의 월급은 국가에서 지불하였으므로 방자라고도 한다.이 외에 손님은 왕의 후궁으로서 당호가 바쳐지고 독립세대를 영위하는 여인의 집에서 살림을 맡아하던 일종의 가정부에 해당된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손님이라는 이름은 궁 밖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궁중의 시녀들, 곧 무수리나 각심이 등과는 다르게 예의를 갖추어 주는 말로 보인다. 다음으로 의녀란 궁중의 내의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다. 좁은 의미의 궁녀라고 일컫는 나인과 상궁도 구분이 명백하였다.

    보통 궁녀에는 3가지 등급이 있었는데, 상궁·나인·애기나인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이들도 입궁시기와 소속부서에 따라서 격의 높낮이에 차이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상궁이었다. 상궁 밑으로는 나인이 있었으며, 이들의 역할은 상궁과 거의 같았으나, 주로 상궁의 보조역할을 하였다. 나인 아래에는 애기나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기나인 또는 생각시라고도 하였다.

    궁녀의 출신계급은 지밀(至蜜)과 침방(針房)·수방(繡房)은 중인계급, 기타는 상인계급이다. 입궁연령은 지밀이 가장 어린 4∼8세, 침방과 수방은 6∼13세, 그 외에는 12∼13세가 일반적이었다. 궁녀는 20세 전후에 계례를 치르고 정식 나인이 되었다. 나인이 된 후에는 15년이 경과되어야 상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왕의 후궁이 되면 20대 상궁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궁녀는 왕의 자손을 낳기 전에는 상궁으로 머물게 되지만, 대신 궁녀의 기본적 임무는 주어지지 않고 왕의 시중만 전담하게 되었다. 이 경우를 승은상궁(承恩尙宮)이라 일컫는데, 이들이 왕의 자녀를 낳게 되면 내관인 종4품 숙원(淑媛) 이상으로 봉해지는 것이 상례이며, 독립세대를 구성하게 된다.

    궁녀는 실제로 왕족들이 자신들의 생활상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존재였다. 궁궐 내의 모든 궁녀들은 입궁에서 퇴출까지 원칙적으로 종신제였다. 그러나 중병 또는 가뭄으로 궁녀방출이 이루어지거나 모시고 있던 상전이 죽는 경우에는 중도에서 궁궐을 나갈 수 있었다.

    <궁녀의 결혼>

    궁녀의 결혼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궁녀는 왕의 여자였기때문입니다.

    한번 궁녀로 들어오면 다시는 궁 밖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승은을 입은 궁녀는 후궁이 됩니다.

    장희빈 전까지는 궁녀가 왕비로 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장희빈이였습니다.

    그러나 장희빈이 빈으로 강등이후에 후궁이 왕비로 승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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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궁궐에 들어간 모든 여자들은 왕의 여자들이였기에 결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간혹 인간적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통정을 한 경우 죽임을 당하거나 궁궐 밖으로 쫓김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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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녀가 된다면 다른 남자와 연얘도 결혼도 모든 것이 통제당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일이 발각 될 경우 사형까지 직면할 수 있었지만 목숨까지 걸면서 사랑을 하다 적발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궁녀들이 한 두명이 아니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왕의 여자이지만 이들은 남자와 관련되어 모든 것이 통제 당했고 만약 궁녀를 은퇴하게 되더라도 남자와 혼인이 금지시 되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가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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