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노비가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나요?
조선시대의 노비도 개인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노비가 나라에 구휼미 삼천석을 기부했다는 기록이 있던데 그럼 엄청난 부자가 아닌가요!
노비가 무엇을 해서 그런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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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 성종 재위 시절. 극심한 가뭄이
들어 나라에서 구휼미를 풀어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하려 했지만
그 양이 턱없이 부족했을때,
굶주린 조선 백성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쌀 2천 석을 기꺼이 내놓은
거액의 기부자가 있었는데,
그사람은 충북 진천에 사는 임복이라는 사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신분이
노비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부 노비 중에는 재산을 축적해 부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태종 대의 의흥삼군부의 좌군에 속한 공노비였던 불정은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부자 노비였다고 하네요. 선조 대 성명 미상의 공노비는 당시 한성의 최고 기생이었던 성산월을 차지할 정도로 재산이 많았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외거노비 즉, 주인과 따로 사는 노비의 경우 어느정도 재산도 가질 수 있었으며, 추후 돈이 많아지게 되면 '신분'을 사서 면천을 하여 양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조선 후기로 가면서 소위 '신분'보다는 '돈'이 중요해짐에 따라 가능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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