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불교의 창시자 박중빈은 일찍부터 우주와 자연 현상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수도를 시작했다.
또한 그는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보면서 이들을 구제할 방안을 고민했고, 의병의 저항과 한일 강제 병합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족의식이 높아졌다.
20여 년의 수도 끝에 깨달음을 얻은 박중빈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사람들과 함께 제방을 쌓고 농토를 만들며 자력 갱생 사업을 벌였다.
박중빈이 만든 공동체는 노동 공동체이자 신앙 공동체였다. 박중빈이 살아 있을 때는 ‘불법 연구회’라고 불렀고, 그가 1943년에 세상을 떠난 뒤 제2대 교주 때부터 원불교라고 불렀다.
박중빈이 깨달은 진리는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과 비슷하고, 석가모니를 선각자로 존중한다.
하지만 원불교는 불교의 한 종파가 아니라 새로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박중빈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불교와의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원불교는 동학처럼 낡은 세상이 가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후천 개벽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띠었다.종교의 성격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