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1636년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바꾼 홍타이지(태종)이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가 원인입니다. 청의 군신관계 요구에 대해 최명길을 대표하는 남인은 종묘사직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어 강화를 맺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서인들은 강화를 거부하고 척화 주전론을 주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청군 4만 6천명은 12월 8일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강화도 파천 결정이 늦어져 12월 14일 나섰지만 길이 차단되어 남한산성으로 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