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개성 상인 송상들이 명성이 높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선 후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상인들이 존재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개성 상인 송상이 전국적인 명성이 대단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의 경강 상인보다 오히려 개성상인들의 위세가 더 높았나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때도 개성에는 시전을 설치하고 정부의 보호 아래 국내 각 지역과 송나라를 대상으로 활동을 하던 상인들이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송상이라고 하면 조선의 사상(私商)을 가리킨다. 고려 때 개성에서 활동하던 대규모 상인들은 조선건국 후에도 상업활동을 계속했으며, 벼슬길이 막힌 고려의 일부 관료들도 상업에 종사했다. 이들은 전국적 규모의 상업을 통해 조선 초부터 많은 이익을 올렸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들어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청과의 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그 활동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들은 각지에 송방을 설치해 전국을 무대로 상업활동을 했으며, 역관을 비롯한 관상(官商)과 밀착하거나 의주상인·동래상인들과 연계를 맺으며 대외무역에 적극 참여했다.
18세기 이후에는 도고상인으로 성장해 상품을 매점하는 한편, 광산을 경영하거나 인삼의 재배 및 가공업에도 투자하는 등 상업 이외의 분야에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상업자본으로 성장해갔다. 송상의 자본력과 활동규모는 경강상인에게 비길 만한 것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조선정부의 봉건적 상업체제에 타격을 가해 경제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개항 이후 외래자본의 침투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점차 쇠퇴해갔다. 송상은 상업활동의 과정에서 장부정리를 위해 사용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식부기법인,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을 남기기도 했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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