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황후는 당시 세자였던 장조(사도세자)와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장조의 입장에서는 새어머니가 자신보다 무려 10살이나 어렸던 것입니다 결국 장조가 뒤주에 갇혀 죽게된 이른바 임오화변(1762년)에 일조를 했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장조가 죽고나자 정순황후는 장조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를 적대시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벽파'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후 정조가 붕어하고 손자뻘인 순조가 등극하자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데 벽파를 중용하면서 천주교를 적극 탄압하기도 합니다 수렴청정은 1804년에 거두게 되는데 정순황후는 1805년 1월12일 보령 61세로 승하 합니다 역시 소생은 없습니다 능호는 '원릉'으로 영조와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핍박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는 조선 단종의(端宗)의 정비 입니다. 시호는 단량제경정순왕후(端良齊敬定順王后) 입니다. 여량부원군 송현수(礪良府院君 宋玹壽)의 딸로, 본관은 여산 인데 김종서의 사후 1454년에 간택령에 따라 왕비교서를 받고 즉위하였고 남편 단종이 강등되면서 군부인(君夫人)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게 나름대로 보호 해 주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신숙주가 자신에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를 달라고 했으나 세조는 거절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