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93년 7월 일본군 왜장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습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불렀으며, 사당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이 장수군 장수면장수리에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를 건립하였습니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1956년 '논개사당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놓았습니다.
아무튼 논개의 의거는 전후 진주 사족 및 주민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면서 너무나 유명해져서 1722년 국가에게서 정식으로 '의기' 칭호를 받게 됩니다. 진주의 기생들은 매년 6월 29일, 즉 진주성 함락일이자 논개의 기일에 모여 제사를 지냈으며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도 행사가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매년 춘추제를 지내며 6월 중 길일을 잡아 사흘 동안 제전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