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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16

조선총독부는 왜 철거를 햇는지 궁금해요.

조선총독부는 우리 과거의 뼈아픈 아픔인데 왜 철거를 하였나요? 분명 뼈아픈 과거를 반성하고 후손들에게 역사를 알리기 위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어떠한 이슈로 철거했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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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23.02.16

    안녕하세요. 조선총독부 철거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건 김영삼 대통령인데요. 1993년 대통령 취임 이후 철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어요. 그전부터 총독부 철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철거는 1995년에 이뤄졌답니다. 조선총독부의 첨탑 철거를 시작으로 완전하게 해체된 건 1996년 겨울이에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총독부 철거에 대한 이야기는 진전이 없었는데요.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메이지 건축연구회 때문에 총독부 건물을 없애는 게 쉽지 않았어요.그전에는 석재로 이뤄진 건물을 해체할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었답니다.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인해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에 완전히 철거가 되었고 총독부의 첨탑은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 국권피탈로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 35년간 한반도에 대한 식민 통치 및 수탈기관으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해체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신인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총독부는 해방 후 바로 철거했어야 했는데, 제헌국회, 중앙청, 중앙박물관등 다양한 건물로 활용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일제가 망가뜨린 경복궁바로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총독부 철거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완전철거, 이전 등의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었는데, 일본이 자기들이 지은 건물이니 일본으로 가져가겠다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이전해서 자신들의 전성기를 전시할 계획이었죠.


    김영삼은 격분했고, 완전폭파를 선택합니다.

    폭파과정에서 남은 부자재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 야외전시관에 있습니다. 가서 보는 것도 좋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 서울의 구 일본 총독부 건물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50년이 지난 1995년에 철거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에서 벗어나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 건물은 1926년에 지어졌으며 한국에 있는 일제 총독부 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 정부는 건물을 사용하여 한국인을 통치하고 통제했으며 종종 잔인한 억압과 탄압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병원, 대학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의 연관성은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한국인들은 건물을 일제의 억압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1990년대에 한국 정부는 문화 및 국가 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한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공공 공원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건물을 철거하기로 한 결정은 논란이 되었고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에서는 유적지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일부에서는 식민지 과거로부터의 한국의 단절을 상징하는 방법으로 철거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건물은 철거되고 새로운 공원으로 대체되어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처음에 해체가 논의된 것은 6.25

    전쟁 중이었던 1.4 후퇴 이후에 막

    서울을 수복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의 상징을 서울의 심장부에

    둔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철거를

    지시하면서였다.


  • 안녕하세요. 김대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처음에 해체가 논의된 것은 1.4 후퇴 이후에 막 서울을 수복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의 상징을 서울의 심장부에 둔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철거를 지시하면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국력으로는 건물의 내구력이나 파괴력 문제가 아니라 철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큰 건물이어서 부수는데 예산을 쓰고 정부 청사로 쓸 새 건물을 근처에 짓는데 예산을 써야 하는데 그것도 낭비이니 결국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경복궁 복원 계획이 확정되면서 다시금 철거 논의가 나왔습니다. 1991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중앙청 철거를 지시했습니다. 이 때 일본 근대 건축사 연구단체 '메이지 건축 연구회'가 "양국 간에 불행한 역사긴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 건축물 역사상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고 하여 보존을 촉구했는데 오히려 이 사실이 공분을 사 한국의 여론이 악화되는 바람에 철거 찬성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노태우 정부의 비서진이 바뀌면서 철거계획은 다시 흐지부지하게 넘어갔습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다시 해체 계획이 입안 되었고, 이 해체 결정에도 많은 국내외적인 논쟁이 일어났으나 결국 해체가 결정됐습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의미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을 실시하였고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가 그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5년 3월 1일 오전 10시에 정부는 구 총독부 앞 광장에서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 축제'를 열어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옛 총독부 건물을 헐어낸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날 선포식에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경과 보고를 통해 "오늘 삼일절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의 시발점으로 삼는다."라고 천명했습니다. 이어 "8월 15일까지 철거 실측 작업을 마친 뒤 광복절을 기해 총독부 건물 중앙돔의 첨탑을 끊어낸 뒤 내년 초까지 철거를 완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거기에 경복궁 복원 계획도 같이 천명했습니다.

    드디어 8월 15일 광복절 오전 9시, 옛 총독부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중앙돔 첨탑 분리에 앞서 문화체육부 장관은 해방 50년 만에 이뤄지는 일제 상징의 제거를 호국 영령들에게 고하는 고유문을 낭독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 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 복원 작업과 새 문화 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첨탑의 일부분이 들어올려지는 순간, 광복절 경축 행사에 모인 5만여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부채를 흔들며 일제 잔재의 청산을 환영했습니다. 이어 건물 주변에 설치된 수백 발의 폭죽과 불꽃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이후 1996년 초부터 차근차근 압쇄 및 줄톱 공법으로 절단,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철거해 그해 말에는 완전히 해체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철거 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제의 잔재 청산하기 위해서 건물을 철거 해야 된다는 의견이 조금 더 많아서 철거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