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어떻게 철거가 된 것인가요?
조선총독부가 철거가 되었는데요.
철거가 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철거가 되어졌는지 궁금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데 어떠한 이유로 반대를 하였는지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총독부 철거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건 김영삼 대통령입니다
1993년 대통령 취임 이후 철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그전부터 총독부 철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철거는 1995년에 이뤄졌답니다. 조선총독부의 첨탑 철거를 시작으로 완전하게 해체된 건 1996년 겨울입니다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총독부 철거에 대한 이야기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메이지 건축연구회 때문에 총독부 건물을 없애는 게 쉽지 않았다고합니다
그전에는 석재로 이뤄진 건물을 해체할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었답니다
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인해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에 완전히 철거가 되었고 총독부의 첨탑은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철거 반대한 이유는
우선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철거비용에 기존에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이전 후 새건물을 짓는 등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치욕의 역사도 역사라면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일제의 무자비한 침탈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문화재로써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반대를 했다고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오고 나서 과감하게 폭파를 시켰습니다 일본에서는 자기들이 가져가겠다했지만
우리는 폭파시켰고 또 반대하였던 사람들 이유는 놔둬어서 역사적으로 기억해야한다는 이유때문이었을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총독부 철거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건 김영삼 대통령인데요.
1993년 대통령 취임 이후 철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어요. 그전부터 총독부 철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철거는 1995년에 이뤄졌답니다. 조선총독부의 첨탑 철거를 시작으로 완전하게
해체된 건 1996년 겨울이에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총독부 철거에 대한 이야기는 진전이 없었는데요.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메이지 건축연구회 때문에 총독부 건물을 없애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전에는 석재로 이뤄진 건물을 해체할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었답니다.
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인해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에 완전히 철거가 되었고 총독부의 첨탑은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국가기록원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광복 이후 조선총독부 청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에 자주 등장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고 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이 조선총독부 청사를 미군정청 청사로 사용하였다. 미군정에 의해 이 건물은 캐피탈 홀(Capitol Hall)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이를 한국어로 변역해 ‘중앙청’ 이라고 불렀다. 1948년 5월 31일에 중앙청에서 제헌국회를 개의하였고, 1948년 8월 15일에는 중앙청 앞뜰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이 거행되었다. 6.25전쟁 중에는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이를 청사로 사용하였다. 북한군은 퇴각하면서 중앙청에 불을 질렀는데 이로 인해 내부가 피해를 입었다. 1962년에서야 서양식 정문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옛 자리에 복원하였다.
중앙청은 주요 행정부처가 자리를 잡아 중앙행정관청으로서 기능하여, 권부(權府)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정부종합청사가 세워지고 행정기관 일부가 과천 등으로 이전하면서 권부의 상징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었다. 또한 일제 침략의 상징적 건물이기 때문에 주요 정부기관의 집무실로 사용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이에 중앙청 건물은 보수를 거쳐 1986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용도를 변경하였다 하더라도 옛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앞에 버티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었고 그것이 나라의 보물을 보관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인다는 것도 국가적 자존심과 국민감정에 좋지 않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총독부 청사 철거 논의는 6.25전쟁 중 서울 수복 이후에도 있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이 경제사정이 대규모 건물을 해체할 여력이 없었기에 유야무야되었다.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는 1990년 경복궁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논의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루어졌다. 1993년 8월 9일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해체하고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국책사업으로 건립하라고 지시했다.이에 1994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치욕적인 역사를 씻어내자는 측에서의 완전 철거 주장과 뼈아픈 역사를 뒤풀이하지 않기 위한 반면교사로서 역사적 증거로 보존하자는 논쟁이 일어났다. ‘완전철거론’과 ‘현상보존론’, ‘이전복원론’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신한국 창조와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웠던 당시 정부는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결정했다. 철거 시점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8월 15일로 정해졌다.
광복 50주년 경축식에서 중앙돔의 해체를 시작으로 70년간 우리 땅에 버티고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철거에 들어갔다. 1996년 11월 13일 조선총독부 건물의 지상 부분 철거가 완료되었고, 1998년 8월 8일 독립기념관은 중앙돔과 건축부재로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을 개원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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