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외로운침팬지184
외로운침팬지18423.10.04

조선시대에 있었던 단종복위운동에대해서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단종복위운동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실패로 끝난거같은데..아시는 전문가님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만에 죽고 12세의 어린 왕세자가 즉위하자 이때부터 조정 안에는 불안한 공기가 감도는데 어린 왕의 보필을 맡은 이는 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김종서 등 문조의 고명을 받은 원로대신과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학사 출신의 소장문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로대신들은 이미 칠순이 넘은 고령으로 정치 문제에 왕성한 정력을 경주할수 없었고 소장문신들은 아직 관위가 낮아 국가 대사에 직접 참여할수 없었습니다. 이때 왕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이 단종의 심복 대신을 제거하고 정권 찬탈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1453년 10월 계유정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정변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필하는 황보 인, 김종서 등의 대신을 주살, 제거하고 자기의 정권 찬탈의 야망을 달성한 폭력 행사로 이 정변으로 단종의 보좌세력은 전부 제거되고 수양대군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 신숙주, 한명회, 권람, 홍윤성 등은 1455년 윤 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이에 과거 세종, 문종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은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등 문관은 무관인 유응부, 성승, 박쟁 등과 모의, 상왕을 복위시킬 기회를 찾게 됩니다.

    이 집현전학사 출신 문관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거사를 모의한 것은 1455년 10월 경으로, 책명사인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겠다고 통고한 이후부터 진행, 1456년 6월 초하루 창덕궁의 명사신 초대연의 자리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날 세조 제거의 행동책을 맡은 별운검이 갑자기 제외되어 계획은 실행 직전 실패, 이에 거사 주동자들은 거사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루는데 동모자의 한사람인 김질과 그의 장인 정창손의 고변으로 사육신과 그 밖의 연루자가 모두 처참되고 단종복위거사는 실패가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53년(단종1)에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을 지키라는 문종의 고명을 받은 황보인 김종서 등 수십명을 죽이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에게 양위받는 형식을 취해 권력을 찬탈하여 왕위에 오릅니다. 이에 부당함을 주장하며 성삼문 등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하였으나 세조에 의해 발각되어 척결되고 단종 또한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에서 사약에 의해 사사되고 맙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여섯명은 죽음으로써 수양대군에 저항하여 사육신으로 불리고 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은(논란이 있응) 등은 불사이군을 주장하며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켰다하여 생육신으로 불립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56년 6월, 과거 집현전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들은 명(明) 사신의 창덕궁 연회를 기회로 세조 시해를 모의하였으나

    동모자의 배신으로 사전에 적발되면서

    실패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