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정조시대가 조선의 르네상스시대라고 하는것보다 실제는 정조의 치적이 더 강했지요 정조시대에는 중국의 사대사상이 사라지고 민족주의에 의한 독자적인 문화가 이룩된 문예 부흥기였습니다 그림에서는 "진경산수"가 글씨에서는 "동국진체"라는 독자적인 풍이 유행했으며 이전까지는 그림을 그려도 중국의 화첩을 베끼는 수준이었는데 이때부터 진짜 우리나라의 산천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런 문화적 발전이 양반층뿐 아니라 평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이른바 "진경시대"라는 문화적 황금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영조와 정조는 붕당정치의 당파성을 일정 부분 억누르고 안정된 왕권을 구축한 마지막 왕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문화 부문에서 적극적 지원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왕성한 활동과 성취가 있었습니다.
영조와 정조 모두 학술, 문화, 과학기술 등 여러 방면에 스스로 관심이 많고 안목도 갖추었기에 문화 부흥이 가능했다고 보입니다. 영조는 정통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겪고 뛰어난 군주가 되기 위해 자질과 능력을 키웠기에 조선후기 세도정치의 암흑기 전 빛나는 성취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