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8.15일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어 조국광복을 맞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스스로 해방을 이룬 것이 아니고 연합국에 의해 해방이 되었기때문에 우리의 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고 1919.4.11일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항주 난징 광저우 류저우를 거쳐 충칭에 자리잡았던 정부요인들은 해방이후 개인자격으로 귀국하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이는 광복군을 조직하여 우리나라를 스스로 찾으려했으나 뜻을 이루기 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한은 일왕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1945.8.15일을 광복한 날로 보아 굉복절로 보고 있고 북한 항복문서에 싸인을 한 9.9일을 조국해방일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