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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한오솔개199
대견한오솔개19923.02.26

한글은 세종이후 그러면 우리말의 역사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말의 역사는 어떤가요?

특이하게도 많은 단어들은 한자에 그 기원이 있지만

한자문화권이면서도 우리말 특유의 어순 품사들의 존재,

어떻게 보면 고대어에서 사라진 고유단어들도 많았을거라 봅니다


우리말의 기원 그리고 그 생명력도 궁금합니다

한글은 우리말에 또다른 생명을 부여했지만

그전에도 우리말은 대단한 발자취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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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질문자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한글이전에는 우리말이 있었으나 한문으로 대신하여 썼다는것은 아실 것입니다.


    모든 소리내는 동물들은 언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조상들의 언어는 있었지만 기록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말이 있어도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맂라 생각되어지며 이제 한글이후에는 제대로된 우리말이 완성되어진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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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한글은 우리말에 대한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했지만, 그 전에도 우리말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우리말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약 5000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인도-유럽어족의 일부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말의 발전은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문화권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한자어가 우리말에 도입되었고, 일본문화권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어와 많은 단어들이 공유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은 그 자체로도 독특한 특징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은 조사라는 고유의 언어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복잡한 문장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말은 주어-동사-목적어 순서가 아닌 주어-목적어-동사 순서를 취하므로, 다른 언어와는 다른 어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우리말이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한글이 등장하기 전에도 우리말은 이미 많은 문학작품과 서적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 시대에는 화학, 의학, 천문학 등의 분야에서 우리말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문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고유어와 함께 한문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현대 국어에 반영한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내면서, 우리말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말은 그 자체로도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거쳐 발전해온 소중한 언어이며, 한글이 등장한 후에도 그 발전과 생명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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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자료를 찾다 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있는데 우리의 발자취와 관련된듯 하여 전드리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가림토'는 상상력이 만든 거짓 문자?
    그렇다면 고구려인은 자신들의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문자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자를 이용한 것이 최초의 언어 표기 방식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여러 사정상 아직 마땅치 않다. 그러나 간접적인 정황을 살 펴보면 고구려에도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있었음을 확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한족의 문자라고만 알고 있는 한자는 동북아시아의 공용어였지, 중국 한족만의 글자 아니었다. 한자가 중국 한족의 글자로 독자적인 발전을 한 것은 진시황이 예서체를 중심으로 문자를 통일시킨 다음이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글자를 만든 사람은 창힐(蒼署)이라고 하는데, 그는 동이계의 사람으로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 다고 한다. 황제도 기마종족의 한 갈래이니만큼, 그가 동이계라는 것은 당연하며,런 면에서 한자가 동북아시아 여러 기마종족의 공용문자였음을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더구나 근래엔 한자의 원형인 '금문'(金文)을 연구하던 뤄빈치등에 의해 한자가 원래이계 기마종족의 언어였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쨌든 창힐이 만든 글자는 표의문자로토씨어를 써왔던 기마종족의 일상적인 생활에는 걸맞지 않았다. 따라서 이른바 우릴-이어계의 기마종족들은 최소한 토씨를 표현할 글자가 필요했다. 이런 필요성은 <한단고기>에서 초대 단국 왕검이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도록 지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3세 단군 가륵(嘉勒)때 이르러 을보륵(乙普勒)이 38자의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 정통 역사서에서 가림토라는 문자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따라서 가림토란 <한단고기>의 저자 등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든 것이라는 주장마저 나왔지만, 근래에 들어 가림토에 대한 관심을 높일 만한 유물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만주에서 옛 만주어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비석의 탁본이 공개되었으며, <용변군지>에도 가림토의 한 갈래로 추정되는 글자가 일부 실려 있고, 심지어 경남 산청에서 가림토의 한 갈래로 추정할 수 있는 글자 비석이 나타나면서 그 해석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12세기 경에 세운 신사의 비석에서 한글과 비슷한 글자들이 곧잘 발견되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신대(神代)'라고 부르면서, 자기들 문자의 뿌리라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가림토의 한 변종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인이 가림토와 비슷한 글자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러나 그 가능성에 대한 진단은 미루어두고, 먼저 고구려말과 현대 우리말의 놀라운 연속성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고구려의 땅이름 가운데 곡포(鵠浦)가 있는데, 이때 곡은 큰새 인 고니를 가리킨다. 그런데 고구려인들은 그것을 '고이'라고 불렀다. 또 그들은 길을'줄'이라고 불렀으며, 여우를 '야시'라고 불렀고, 나물을 '나생이'라고 불렀으며, 사슴을 '고라비'로, 멧돼지를 '윷'(윷놀이의 윷이 멧돼지이다.)으로 불렀다. 예를 계속 들수록 언어의 연속성이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나무 그늘을 '근울'이라 했고, 바위를 '바이라 했으며, 붓을 '붓시'라고 불렀고, 옆을 '엇'이라고 불었다. 또 넓고 긴 습지를 오늘날도(무)내미라고 부르는데, 고구려인들도 '내미'라고 불렀으며, 얼굴을 '낮짜-ㄱ' 또는'오걸'이라고 불렀고, 작은 개울을 '어울'이라 불렀으며, 말안장을 '말우'(말의 윗쪽)라고 불렀고, 밭을 '파흘'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오늘날과 매우 비슷한 말들도 많았지만, 오늘날의 우리 언어로는 알기 어려운 것들도 없지 않다. '셋'을 '미'라고 하거나 일곱을'나니-ㄴ'이라고 부르거나 열을 '도'라고 부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말들은 일본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셋'을 '미'라고 읽으며 일곱을 '나나'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있고, 열을 '도'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어쨌든 말과 언어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 개념도 깊고 넓을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런 개념을 잃어버리고 정신이 가난한 민족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다음 이야기는 그 개념의 놀랄 만한 깊이를 따라가게 될 것이며, 그 가운데서 우리말과 우리 정신의 나갈 길을 비추어줄 샛별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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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에도 우리말은 있었습니다. 다만 글자가 없었기에 우리말을 표기 할 떄는 어쩔 수 없이 이두라는 한자어를 차용해서 대신 글로 표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훈민 정음 창제 이후 우리 말을 이용해서 표기도 하지만 아직 까지 우리 생활에는 한자어가 많이 잔존 해 있습니다. 물론 발음은 중국어랑 틀리지만요. 하지만 우리말화 된 중국어도 이제는 우리말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걸 굳이 우리말 화 한다고 하면 더 많은 혼란이 가중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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