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동준 과학전문가입니다.
채륜은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 유악이라는 국가 기획기관에 참가하여 정책 입안에도 참여하였고 왕의 곁에서 자주 간언을 올리는 위치에 올랐다. 더불어 그는 고전의 교정 작업도 감독하는 등 학자 관리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그는 105년 기존의 포장지 개념이었던 종이를 개량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종이를 개발하였다.
그가 만든 종이는 학문발전에 있어 일대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전에 문자 기록은 무겁고 부피가 큰 대나무나 나무판자 혹은 고가의 비단을 이용해야만 했기에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채륜이 글을 쓸 수 있는 가볍고 저렴한 종이를 개발함으로써 문자의 기록과 학문전달은 이전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맞게 된다. 이는 오늘날과 비교하자면 컴퓨터 개발 이상의 지적 혁명이었을 것이다.
채륜의 종이 개발 이전에 문자는 대개 대나무를 쪼개어 이은 것이나 나무판자 아니면 고가의 비단 등에 쓰였다. 이는 보관과 이동, 가격의 면에서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학문지식은 이들 기록물을 가질 수 있는 상류층들에게만 국한되었고 그로 인해 학문의 발전은 지체되었다.
105년 채륜은 나무껍질, 삼베 조각, 헌 헝겊, 낡은 그물 따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어 이를 황제에게 헌상하였다. 채륜의 종이 만드는 법은 비단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 생긴 나머지 비단 실이나 풀솜을 이용하여 부직포를 만드는 방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채륜은 종이의 재료를 잘게 잘라 재료를 물에 녹이고 이를 대나무를 짜 만든 책에 얹어 말리는 공정으로 종이를 완성하였다. 이로 인해 저렴한 재료로 가볍고 질기며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매끄러운 종이가 탄생하였고 이는 인류의 학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 종이를 뜻하는 한자 지(紙)는 당시에는 비단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만들어진 천을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에 채륜이 만든 종이는 채후지(蔡侯紙, 채륜이 만든 종이란 뜻)란 말로 높여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