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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6.26

대한항공 KAL 007기 피격사건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역사 미스터리 중 하나가 대한항공 보잉747 KAL 007기 피격사건이라고 하던데요. 1983년에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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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당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3년 9월 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 007편(기종 747-230B, 기체 등록번호 HL7442)이 사할린 근처 모네론 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 방공군의 Su-15TM 요격기에 격추당해 추락한 사건입니다.

    한국 국적기가 당한 사고 중 최악의 사고 규모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의 뒤를 이어 세계 민항기 항공사고 인명피해 순위 10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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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3년 9월 1일 새벽 3시 26분 사할린 인접 해역 1만m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 수호이 15기가 발사한 2발의 공대공 미사일이 대한항공 소속 007 점보 여객기를 격추시켜 269명의 인명을 몰살시킨 참사입니다.

    8월 31일 0시 5분 뉴욕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 KAL007기는 31일 오후 8시 37분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 승무원을 전원교체 한 후 9시 59분 다시 운항길에 올라 알래스카 남단 캄차카 반도의 남쪽, 일본의 혼슈 상공을 넘어 강릉, 서울로 이어지는 R-20 항로에 들어섰으나 앵커리지를 출발한 직후부터 예정항로보다 우 측으로 이탈, 결국 소련관할 비행정보구역내의 인접 공해상공에 들어간 데 이어 캄차카 반도와 사할린섬 및 그 주변의 영해 상공인 소련영공으로 들어갔는데 이 KAL기를 첩보기로 오인한 소련전투기가 미사일 공격을 가함으로 KAL기는 그대로 격추되어 사할린 섬 서남쪽 동해에 가라앉고, 269명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지게 됩니다.

    사건 발생 후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는 제한된 증거와 상황설정에 의한 추측을 기반으로 소련 요격기들은 캄차카 반도 상공과 사할린 섬 부근에서 KAL007기를 요격하려고 시도했고, 소련당국은 KAL기를 첩보기로 간주, 육안관찰을 통해 이 비행기를 확인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KAL기는 최종 요격시 1만 60m에서 1만 700m로 고도상승함으로써 도피행동처럼 보여 첩보기 라는 의심을 굳혀주었고 KAL 007기 승무원들은 요격시도를 몰랐던 것 같다는 내용의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완전무결한 계기에 의해 운항하는 최신 여객기가 어떻게 항로를 이탈할 수 있는가, 소련은 왜 비무장 민간여객기를 격추시켰으며 격추명령은 누가 내렸나, RC-135 미국 첩보기는 왜 비슷한 시간에 정찰을 했는가 등 많은 의혹을 남겼습니다.

    사건발생 직후 정부는 소련을 격렬히 규탄하는 한편, 소련 영토 내의 국제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올림픽에 소련을 참여시키기 위해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음으로써 민항사상유례가 드문 참극은 양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하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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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항공 007편( Korean Air Lines Flight 007)격추사건은 1983년 9월 1일에 미국 뉴욕 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김포국제공항으로 오던 대한항공 소속의 007편 여객기가 비행 중 경로를 이탈하였다는 이유로 소비에트 연방의 영공에서 소비에트 연방 공군 소속의 수호이 15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사할린 서쪽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숨진 사건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전두환 정부는 소련을 격렬히 규탄하는 한편, 소련 영토 내의 국제 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1988년 소련을 올림픽에 참여 시키기 위해 문제를 확대 시키지 않음으로써 민항사상 유례가 드문 참극은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 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었습니다. 후진국이 격을 수 밖에 없었던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 이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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