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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쌍7214
한알쌍721423.04.25

조선 건국을 위해 개성에서 한양으로 왜 옮겼다?

고려왕조의 수도는 개성인데,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신하들이 많아서 결국 한양으로 옮겼어요.

굳히 한양으로 왜 옮겨야 하는 이유가 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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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1달만에 천도를 결심합니다

    그간 풍수지리설에선 개성의 땅이 좋지 못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이 나오기도 했죠 후에는 남경길지설(남경 즉, 서울이 좋은 땅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한양은 한반도 중앙에 위치했고 남쪽으로는 세계적으로 드문 폭이 큰 강인 한강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쌓여 외적의 침입을 막기 좋습니다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복궁도 건설되었는데요 우선 북쪽의 산들이 경복궁을 감싸고 아래로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그야말로 풍수지리설에선 명당인 곳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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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서울이 최초로 한양이라 불리게 된 때는 고려 충렬왕 34년입니다. 그 후 조선 제 1대 태조 4년 때 비로소 한성이라 불리게 되죠. 그 후 1946년 8월 15일에 서울시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또한 2005년 1월 18일에는 서울의 한자 표기가 바뀝니다.

    서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태조 이성계 때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왕산 바위를 한양도성 안으로 들여놓을지에 대한 갈등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바위의 모양이 부처님의 모양이었던 것입니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자는 주장을 했던 유학자 정도전은 당연히 한양도성 안으로 들여놓으면 안 된다고 했고, 무학대사는 스님이었기 때문에 한양도성 안으로 들여놓자고 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그것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아침, 눈이 녹아 내린 선이 발견되게 됩니다. 마침 그 선이 바위를 빼고 둘러져 있는 성곽 모양 같았기에 그 선을 따라 도성을 지으니 그것이 바로 한양도성입니다. 눈 울타리를 한자어로 '설울'이라 하는데 그 말이 변천해서 서울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설은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이라는 단어로 전해져 내려와 서울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경이 개성으로 바뀐 시기는 995년, 즉 고려 성종 14년입니다. 참고로 개경이라 최초로 이름이 붙은 시기는 고려 제 4대 광종 때이죠.

    마지막으로 평양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고구려의 수도가 되었으며, 지금 현재 북한의 수도이기도 합니다. 개성은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을 당시 수도이기도 했거니와 고려의 수도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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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강력히 밀어붙여서 성사한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재위 기간이 7년 정도인데요. 재위 기간에서 신하들이 반대하는데도 강력하게 추진한 유일한 사업이 바로 한양 천도입니다. 한양 천도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기가 무너 뜨린 고려의 궁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약간 꺼림직 했을 것이고 거기에 무학 대사가 추천한 한양은 풍수지리적으로도 매력적이라서 그런 선택을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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