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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키위191
넉넉한키위19124.01.30

고대나 중세의 동서양에서 기상천외한 미의 기준이 있다면 어떤게 있을까요?

시대에 따라 그리고 각 지역별로 따라 미의 기준이 매우 다르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고대나 중세의 동서양에서 기상천외한 미의 기준이 있다면 어떤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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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여성들이 발을 작게 유지하기 위해 발을 묶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작은 발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고대 일본에서는 여성들이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검은 이가 건강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중세 유럽에서는 여성들이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염색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는 화장과 염색이 악마의 유혹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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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에서는 조화로운 비율과 균형 잡힌 신체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서양에서는 곡선미가 강조되는 여성스러운 몸매를 선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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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의 기준은 아시다시피 국가별로, 시기별로 다양하게 변모하여 왔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시대, 한국가를 풍미했던 독특했던 미의 기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유명한 것은 중국에서 13세기 정도까지 전족이라고 하여 발이 작은 것을 미인이라고 여겨 어릴때부터 발을 꽁꽁묶어 발을 크지 않게 관리하였습니다. 실제는 여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유행시킨 것이라는 것이 현대의 해석 입니다. 두번째로는 세계 2차대전 중에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미를 위해 다리에 페인트를 칠하기도 하였습니다. 스타킹이 없어 스타킹을 신은 것 처럼 다리에 칠을 하였는데 당시에 나일론이 부족하여 남자들이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아름답게 여겼기에 여자들은 스타킹을 구할 수 없어 다리에 칠을 하였습니다. 세번째로는 영국인데 18세기 전에 영국의 남성들은 종아리를 두껍게 하기 위해 패드를 착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굵은 종아리는 남자의 상징이었는데 당시에 그에 더 집착하여 가슴과, 신발 깔창 처럼 종아리에도 패드를 작용하여 두껍게 보이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추가로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달아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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