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때 귀향은 형벌이 아니였나요?
안녕하세요
고려 시대 때 귀향은 굉장히 큰 형벌이였는데요
근데 이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귀향은 형벌로 인식이 안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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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은 대명률에 따라 태, 장, 도, 유, 사로 구분됩니다. 여기서 '유'가 유배, 귀향(귀양)을 말합니다. 유배형은 장형과 함께 처했는데, 3등급(2000리, 2500리, 3000리)으로 구분됩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질문하시는 것이 귀향인지 귀양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귀향이라 하심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이것이 조선시대에는 별로 흠이나 형벌로 인식이 안되었다고 한다면 제 추측에는 이것 같습니다.
귀향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관직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간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사로운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미련없이 그것을 버리는 이른바 물욕이 없음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로서 지방에는 많은 개인 학교(서원)이 발달했습니다. 이렇게 귀향을 한 사람들이 지방에서 학생들을 교육시켜서 오히려 더 명성을 얻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귀향이 오히려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기에 오히려 기꺼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귀향은 '유배형'으로써(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중 4번 째로 무거운 형벌 ) 조선시대 역시 형벌의 일종이었습니다. 단, 짧은 기간 임시로 유배에 처하는 경우는 형벌로 보지 않았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