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 한 후 CIA암살 사주설이 번져 한-미 정부가 진화에 나서게 됩니다.
이는 지미 카터 대통령이 취임 이후 주한미군철수, 인권개선문제로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온 것에 따른 것으로 당시 전세계는 카터와 박정희의 불편한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켜보고 있었으며 박정희 타계는 당연히 미국과 관련되 있을것이라는 추측이 생기게 됩니다.
1979년 11월 2일자 미국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 주요 매체들이 박정희 암살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표현과 함께 미국의 개입 의혹을 제기합니다.
당시 인디펜던스이브닝 포스트는 김영삼의 축출,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적인 정책에 대한 워싱턴의 강한 반응, 미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과 부산과 마산의 폭동에 이은 암살로 순차적인 전개 국면을 봤을 때 미국을 염두에 두는 것은 타당한 일이라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