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첩제도는 언제부터 조선에 생겼나요?
조선시대에 한명의 처와 여러명의 첩이 있던 것과 달리 고려시대에는 결혼하지않은 첩을 두지않는 것이 사회의 관행이었는데 처첩제도가 조선의 시작부터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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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첩제도는 조선 뿐 아니라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사회는 처첩의 구분이 엄격히 적용되던 사회였습니다.
『화랑세기』 10세 미생랑 조에 미생은 처첩이 많았고 아들이 백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모두 기억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와 고려시대의 지배층들은 2처 이상을 처로 맞이하기도 했지만 신분이 낮은 여성을 데리고 사는 경우 처로 인정하지 않고 ‘첩’이라고 했다. 조선 건국 후인 1413년(태종 13)에 처가 있는데 또 처를 얻는 중혼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후에는 한 사람의 처 외에는 모두 첩이 됨으로써 처와 첩의 명분이 분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조선 정부에서는 적처(嫡妻)와 첩 사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첩으로 인해 처의 지위가 침해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낮은 신분으로 인해 천시 받던 첩은 조선 건국 이후의 이와 같은 법 제정과 유교 이념의 영향으로 또 다른 부정적 시선을 받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태종은 일부일처제를 중심으로
한 처첩제도를 만들고 처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적자,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서자(서얼)이라하여 차별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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