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복위를 수행한 사육신 문의입니다.
안녕하세요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힘으로 물러나게해서 왕위를 쟁탈했는데 이 세조를 없애고 단종을 복귀시려 준비한 사육신을 배신한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포근한동고비8입니다.
김질 (金礩)
본관 안동. 자 가안(可安). 호 쌍곡(雙谷). 시호 문정(文靖). 개국공신 사형(士衡)의 증손자. 음보로 충의위(忠義衛)에 속하여 부사직(副司直)에 이르렀을 때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청원, 허락받았다. 성균관에서 참상관의 수학제도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 추장문과에 정과로 급제, 주부에 제수된 뒤 사간원우정 ·병조좌랑을 지냈다. 그 무렵 성삼문(成三問) ·최항(崔恒)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문종의 사랑을 받았다.
1455년(세조 1) 성균관사예(司藝)가 되고, 다음해 성삼문 등과 단종복위의 거사를 꾀하였다. 여러 번 기회를 놓치고 위험을 느끼게 되자, 동지들을 배반하고 세조에게 고변하여, 이른바 사육신사건을 일으켰다. 그 공로로 군기감판사(軍器監判事)가 되고, 이어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 상락군(上洛君)으로 봉하여졌다. 평안도관찰사 ·공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右參贊) ·경상도관찰사 등을 거쳐, 1468년 우의정, 이어 좌의정으로 승진하였다.
그때 영의정 한명회(韓明澮) ·신숙주 등과 함께 원상(院相)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 원상세력과 함께 나이 어린 예종과 성종 초기에 국정서무를 주관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구성군(龜城君) 준(浚)을 제거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고, 1474년 우의정으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세조의 공신으로 특히 세조의 병제개편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경국대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