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나무777
나무77723.04.08

조선시대 양반제도가 조선초부터 확립되어 있었나요?

아니면, 초기에는 느슨했다가 어느시기가 되어서 명확하게 구분 되었나요? 조선 시대는 계급사회 였는데, 초기부터 엄격했나요?

평민은 절대 양반이 될수 없었던 건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고려를 이은 나라입니다. 고려의 신분제도가 그대로 조선에도 이어졌습니다.

    다만 고려의 귀족이 문반과 무반이라는 양반으로 나뉘어 불렸을 뿐이죠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네 신분이 형성되어 있었다. 양반의 사회적

    지위와 특권이 강화되면서, 조선 사회는

    양반 중심의 사회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신분의 변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이러한 신분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제도는 조선 초기부터 확립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관료제도와 조선의 새로운 사회체제를 결합한 조리시스템을 시행하였습니다. 조리는 국가가 관료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이었으며, 이를 통해 국가의 중요한 지위에 있는 관리들을 양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양반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고려시대의 관료제도를 기반으로 하면서, 조선의 사회, 경제,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조정과 사대부에서 선발한 인재들에게 선조들의 토지, 노비, 계급 등의 특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양반들은 국가의 중요한 지위와 특권을 가지고 사회 경제적인 지위를 높였습니다.


    양반제도는 조선시대 말기까지 이어졌으며, 그 사이에도 여러 차례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양반제도는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의 한국사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은 처음에는 관제상의 문반과 무반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가 고려말 조선 초기부터 관제상의 문, 무반 뿐 아니라 점차 지배 신분층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지게되었습니다.

    즉 고려시대~조선시대 지배층 신분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고, 과거에 응시해 관직에 나갈수있는 특권적 지위를 누렸으나 정부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가 재정이 궁핍해 관직을 부유한 평민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조선 초는 신진사대부가 집권층이 되어 이들이 자연스럽게 훈구세력화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추후 사림세력이 정계에 진출함에 따라 이들을 중심으로 양반관료사회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평민도 조선 중기 이후에는 신분을 사서 양반이 될 수 있었습니다.)

    - - - 답변이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눌러주시고,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