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은 처음에는 조광조의 개혁 정치를 지지했지만, 훈구파의 반발과 조광조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점차 그를 의심하게 됩니다. 결국 중종은 훈구파의 모함에 넘어가 조광조를 사사하게 됩니다 조광조의 개혁 정책은 훈구파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훈구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훈구파는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중종에게 조광조가 모반을 한다고 모함했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검호하고 성실한 왕이었으나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사림파 조광조입니다. 현량과 실시와 서얼 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중종에게 언로를 개방할 것을 건의하여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3사를 활성화 시킬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도교의 소격서를 폐지를 놓고 중종과 조광조는 갈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종은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중용했으나 사림파가 정권주도권을 쥐고 마음대로 할 것을 바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격서 폐지를 중종이 허용했으나 이것이 화근이 되어 조광조는 주초의 난을 일으킬 인물로 낙인찍혀 기묘사화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