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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izty
있지izty24.02.05

포도대장 구선복은 어떻게 죽었나요?

구선복이 사도세자의 뒤주를 지켜서 정조대왕께서

구선복에게 감정이 안좋았을거 같은데 역린보니

용서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던데 후에 처리하나요 아니면 군권을 잡고있는 사람이라 냅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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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문 무인가문 출신의 구선복은 사실 안하무인이었습니다. 그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 당시 뒤주의 감시책임을 맡은 포도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정조가 보는 앞에서 사도세자를 심하게 모욕합니다. 정조는 역적 구선복으로 말하자면 홍인한보다 더 심하여 손으로 찢어죽이고 입으로 그 살점을 씹어 먹을 것이라 했다고 전해옵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뒤에도 10여년 동안이나 처리를 못하다가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고 군부 내에서 최고의 실권을 쥐고 있던 구선복을 상계군을 세자로 앉히려 했다는 죄목으로 잡아들였고 능지처참형으로 죽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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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62년 5월 13일 포도대장 구선복은 병사들과 뒤주옆에서 술과 떡을 먹으며 사도 세자를 조롱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저지른 구선복을 정조는 약 24년을 참다가 1786년 12월 6일 구선복은 능지처참(능지처사)을 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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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2.0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선복은 상당한 권신으로 왕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권세를 누렸으나 정조 치세 당시 역모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정조실록에 나와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적 선복으로 말하면 인한보다 더 심하여 손으로 찢어 죽이고 입으로 그 살점을 씹어먹는다는 것도 오히려 헐후한 말에 속한다. 매번 경연오를 적마다 심장과 뼈가 모두 떨리니, 어찌 차마 하루라도 그 얼굴을 대하고 싶었겠는가마는, 그가 병권을 손수 쥐고 있고 그 무리들이 많아서 갑자기 처치할 수 없었으므로 다년간 괴로움을 참고 있다가 끝내 사단으로 인하여 법을 적용한다. 전후 흉악한 역적들을 끝내 성토하고 처벌하지 못한 것은 실로 선조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서 말하기 곤란하기 때문이었는데 의리가 이로 인하여 어두워질까 나름대로 염려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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