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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페퍼민트24.04.02

조선시대의 왕실에서 서자는 어떤 제약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드라마를 보면 왕실의 서자는 왕실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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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서자, 즉 양첩 자식은 관직 진출과 과거 시험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또한 서자들은 상속에서도 제한을 받았으며, 재산의 일정 부분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서자는 1/7을 받았다고 합니다.

    왕실에서도 후궁의 자식인 서자는 '대군'이 아니라 '군'으로 불렸으며, 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적 왕위 계승권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집 크기, 녹봉에서도 차별을 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군은 정부인의 아들이며 군은 후궁, 소위 첩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통 계보를 이어받은 왕의 딸이 공주이며 후궁의 딸을 옹주라 칭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문화가 강했고, 유교의 정신으로 사회질서를 잡으려 했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대군과 군, 공주와 옹주는 그 신분의 차이때문에 군, 옹주들은 차별을 당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대군은 서자인 군에 비해서 사가의 규모도 더 컸고 연간 녹봉도 더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금고법:

    조선시대 양반의 자손이라도 첩의 소생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게 한 제도입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왕위계승 순위에서 밀렸지만

    그렇다고 왕이 될수 없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현재 왕의 총애를 받으면 그리고 신하들의

    지지를 받으면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양반가의 서자 보다는 제 생각은 나은 대우

    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