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랑도의 우두머리인 화랑의 원래 의미는 ‘꽃처럼 예쁜 남자’입니다. 이 이름은 화랑도의 창설 일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흥왕대에 신라가 크게 발전하면서 나라를 위해 일할 인재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좋은 인재를 선발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민하다가, 청소년들을 무리 지어 지내게 하고 그들을 관찰하여 특출한 사람을 선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남모와 준정이라는 아름다운 여인 2명을 원화로 삼고, 소년들로 하여금 원화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원화가 서로 시기하여 다툼이 발생하였고, 급기야 준정이 남모를 살해하면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자 대신 용모가 수려한 남자를 단장시켜 화랑이라 하고, 무리들로 하여금 따르게 하였던 것이 화랑도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청소년 자치 조직이 진흥왕 대에 처음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 조직은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부터 있었고, 고대 국가 단계로 진입한 이후에도 계속 존속하였습니다. 화랑도는 이러한 청소년 조직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정식화한 것입니다.
6세기 전반기에 신라는 주변 소국은 물론, 가야⋅고구려 같은 큰 나라를 상대로 정복 전쟁을 활발하게 벌였습니다. 당시 신라가 화랑 제도를 시행한 것은 단기적으로는 군대를 보충할 병력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이를 통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화랑도는 교육 제도로서의 역할과 함께 인재 등용 제도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