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은 몽골계 국가인가요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 제국이 한때 강성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티무르는 스스로 몽골 징기스칸 후예라고 얘기 했다고 하는데요 티무르 제국은 몽골 제국 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말까지 중앙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지배한 티무르 제국은 몽골 제국의 계승 국가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무르는 1369년 트랜스속시아나지역의 실권을 장악해서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티무르제국(1370~1506)을 성립시켰다. 그는 유럽세계에서는 태멀레인(Tamerlane)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티무르 이 렝’ 즉,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페르시아어의 사투리에서 기원한 단어다. 그가 절름발이였다는 것은 젊었을 때 전쟁에서 받은 상처가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서방원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티무르는 이번에는 그의 관심을 동방으로 돌리게 되었다.
이미 중국에선 몽골제국의 일원이었던 원조가 무너지고 중국인 정통왕조인 명조의 천하가 되었다. 티무르가 칭기스한의 위업을 계승하려 꿈꾸고 있었다면, 중국땅에서 몽골인을 내쫒은 명이 그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정복목표였던 것은 당연했다. 1404년 말 티무르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사마르칸드에서 출발해서 천산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본격적인 중국정복에 나섰다.
이슬람 상인을 통해 재빨리 이 소식을 접하게 된 명의 영락제(永樂帝)는 변경의 방비를 강화해서 티무르와의 일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여기서 서방의 패자인 티무르와 중국의 황제인 영락제와의 사이에 세기의 일전이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늘은 명조를 돕고 말았다. 1404년 말 사마르칸드를 출발하여 시르다리야강의 두터운 얼음을 밟고 오트라르(Otrar)에 이르렀을 때, 이 불세출의 영웅은 병이 들어 그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게 되었는데 때가 1405년 2월 18일이었다.
티무르가 급서하자 티무르제국내에서도 5년간에 걸쳐 승계문제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는데 이를 슬기롭게 진압하고 재위에 오른 인물은 티무르의 제4자였던 샤흐 루크(Shah Rukh:1409~1447)였다. 재위에 오른 그는 수도를 사마르칸드에서 헤랏으로 옮겼고 아들인 울루 벡(Ulu Beg)으로 하여금 제1의 도시인 사마르칸드를 지배하게 하고 자신은 남방의 헤랏(Herat)에 머물면서 티무르제국에 군림하게 되었다.
티무르가 불세출의 정복자였다면 샤흐 루크는 문화에 보다 더 이해가 깊은 통치자였다. 그는 약40년에 이르는 치세를 통해 헤랏과 그 북쪽에 위치한 메르브(Merv)의 부흥에 힘써 훌륭한 궁전을 세웠으며 학문과 미술을 보호하고 장려했다. 또한 그는 훌륭한 외교적 수완도 발휘해서 명과 국교를 회복하고 오스만제국과도 친선관계를 유지했으며 또한 남인도까지 외교사절을 파견해서 우호관계를 구축하고 교역을 활발하게 했다.
샤흐 루크의 이러한 개명적(開明的) 성격은 울루 벡 재위기(1447~1449)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샤흐 루크가 재위하고 있는 동안은 사마르칸드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는 약 3년에 걸친 재위기간동안 티무르제국의 문화부흥을 위해 힘썼는데 궁정에 학자와 문인,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그들과 학문과 예술을 토론했으며 시의 중앙광장에는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 울루 벡 학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건축물들도 세웠다.
또한 그는 천문대를 만들게하여 그 자신이 직접 천체를 관측하고 몇몇의 학자들과 협력해서 천문표(天文表)도 편찬했는데 바로 이것은 17세기 중엽 유럽세계에 전해져 그 정확성으로 서양 천문학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소위 개명군주라면 학자를 보호하고 학예를 장려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중앙아시아사상 울루 벡과 같이 자신도 뛰어난 학자였던 인물은 적을 것이다.
따라서, 당대(當代)의 사람들이 그를 왕좌에 있는 학자라고하여 아리스토탈레스의 제자인 알렉산더대왕에 견주었다고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1449년 울루 벡이 사망하자 아부 사이드(Abu Said)가 재위를 계승했다.
그는 처음에는 사마르칸드에서 제국을 통치하다가 후에는 헤랏으로 옮겨 티무르제국 전체 판도에 걸쳐 자신의 통치권을 지속적으로 확립시키려고 노력했지만 큰 실효를 거둘 수 없었고 그 마저 1469년 살해됨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티무르제국기는 사실상 종료되고 말았고 티무르제국내의 판도는 각지에서 호족세력이 흥기해서 분할되어 버리고 말았다.
티무르제국의 멸망은 또다시 중앙아시아를 사분오열의 상태에 빠뜨렸고, 화려하게 번영했던 투르크 이슬람문화도 이와 함께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1500년 큽차크한국의 혈통을 잇는 우즈벡족이 북방으로부터 침입해서 사마르칸드, 헤라트등 트란스속시아나 지역의 주요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제국의 명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출처 : 투르크 인문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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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베그 구르카니 (1336년 4월 9일 ~ 1405년 2월 18일)는 중앙아시아의 튀르크몽골인군사 지도자이며,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 (재위: 1370년 ~ 1405년)입니다. 그의 이름은 본래
투르크·몽골어계 인명인 테무르이나,
그것의 페르시아어형인 티무르라는
표기로 더 많이 쓰입니다. 유럽권에서는 태멀레인 또는 타메를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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