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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12.06

임진왜란 당시에 도자기 장인은 왜 많이 귀화했나요?

임진왜란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큰 전쟁 중에서 하나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당시에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에 많이 귀화했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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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않았는데 일본은 기술을 가진장인들을 제대로 대우해줬기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일본은 차 문화가 상류사회에 번지고 있었으며,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목공예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은 최고의 상품이자 반드시 일본으로 가져와야 되는 최고급 물품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로들 중 조선에 돌아오기 싫어해 정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귀환 포로들을 잘 대해준것도 아니었고, 신세가 고국으로 돌아갈때 비참해졌기 때문입니다.

    연려실기술 17권에 보면 1605년 승려 유정이 데리고 온 귀환 포로 3천명은 통제사 이경준이 맡았고 해군 선장들에게 일임했는데 선장들이 출생한 곳을 물어도 어릴 때 포로가 되어 본계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모두 자기의 종이라 칭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그 남편을 묶어 바다에 던지고 마음대로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추태가 소문으로 퍼지자 이문창이란 조선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봐야 좋을게 없다는 말을 퍼뜨려 송환을 기피하는 조선인들이 많아져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 끌려왔던 조선인 포로들은 일본에서 농노로 정착했던 부류가 많은데 고국말도 잊었고,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한, 다이묘들은 이들을 장인으로 솜씨좋은 기술자는 사무라이 수준으로 후하게 대접해줬으며 , 뛰어난 도공에게 자기 딸을 내주어 사위로 감아 친인척을 만들어버리기도 했기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인들은 당시에 문화적인 기술력 등이

    상당히 떨어졌기에 강제로 조선의 장인들을

    일본으로 데리고 가는 등 이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귀화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 아리타 지방에서 제작된 도자기는 이후 일본의 규슈 지역의 '이마리 항구'에서 수출되었는데 이후 ‘이마리야키’로 불리며 유럽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인도, 남아프리카 등지로 팔려나가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변변한 그릇을 만들 수 없었던 일본이 이렇듯 도자기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조선인 기술자인 장인들을 존중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차별받던 도공들이 일본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기에 조선의 장인들은 일본으로 귀화를 하게 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