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나라 이후 위촉오 가운데 조조의 위는 삼국 시대의 중심 왕조입니다. 또한 위나라는 주변의 오,촉과 경쟁도 중요하지만 동쪽의 고구려의 성장의 견제 대상이었습니다. 고구려 역시 한의 요동군, 현도군과 대결하면서 성장했습니다.
3세기 초 고구려와 위의 사이인 요동에 반독립적인 공손씨 정권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는 고구려와 위에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위의 공격으로 공손씨가 멸망하자 위와 고구려의 완충지가 사라자게 되었습니다. 이 때 고구려의 동천왕은 요동 진출을 위해 서안평을 공격(242)하자 위와 충돌은 불가피하였습니다.
244년 1차, 245년에 2차로 관구검이 이끄는 위군이 쳐들어와 동천왕은 남옥저까지 도주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248년 동천왕이 서거하고 아들 중천왕이 즉위하였습니다. 이후 259년 위가 3차로 쳐들어왔으나 위군을 물리쳤습니다.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수많은 병사와 백성이 숨지고, 환도성이 불타고 폐허가 되었으나 유효하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위는 오히려 이후 벌어진 사마씨의 전횡으로 내홍이 지속되었으며, 서진이 등장해 삼국이 통일 될때까지 정복 활동이 위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