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를 비롯한 국내 여론과 국제 사회의 압력 속에서 1년만에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하였습니다. 이 후 열강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임을 대내외에 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ㅈ어부 관리와 재야 전직 관리들이 "황제가 없으면 독립도 없다"라는 동양적 관념을 내세우며 칭제 건원을 건의하였습니ㅏㄷ.
이러한 상황에서 고종은 실추도니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개혁을 추진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수립 선포했으며, 광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무렵 러시아와 일본도 무력 충돌을 자제하기로 합의하여 어느 정도 세력 균형을 이루게 되어 외세의 간섭도 상태적으로 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