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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론과 국제 사회의 압력 속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 만에 경운궁으로 환궁하였습니다. 이후 열강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임을 대내외에 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당시 황제국이야말로 자주 독립국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 관리와 재야의 전직 관리들은“황제가 없으면 독립도 없다.”라는 동양적 관념을 내세우며 칭제건원을 건의하였습니다. 이 무렵 러시아와 일본이 무력 충돌을 자제하고 세력 균형을 이루게 되어, 외세의 간섭도 상대적으로 약해졌습니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에서 고종은 실추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며, 그리하여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 제국을 수립·선포했으며,‘ 광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사용하였습니다(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