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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블링하는 낙타
덤블링하는 낙타
23.07.23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희노애락 감정표현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학교에서 미술사를 배우고 있는 학생입니다. 서양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희노애락 감정표현이 종종 드러나있는데 조선시대 초상화는 왜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그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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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23.07.2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초상화를 그리는 중요한 2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이호불사'야. 이 말은 '이호불사 편시타인'의 줄임말로 터럭 한올이라도 다르게 그리면 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전신사조'야. 인물의 정신까지 그려낸다는 뜻입니다.

    겉모습만 똑같다고 잘 그린 것이 아니라 영혼이 없다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의 특징은 얼굴에 드러난 주름과 요철, 반점, 작은 생채기 하나까지 낱낱이 그려놓은 초정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위에 내면의 정신을 담기 위해 전신의 요체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화가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에서는 대상의 외모와 정신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서 담담한 표정과 긴장된 자세의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인물들의 표졍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마음 자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내면의 모습까지 그리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화와는 달리 한국의 초상화는 감상용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본받을 만한 인물을 그려 제사를 모시는 데 주로 사용이 되었던 제사용 사진 정도로 보면 됩니다. 특히 왕의 초상화 같은 경우에는 나라에서는 역대 왕의 어진을 그려 별도의 전각에 봉안했고, 나라에서 그려준 공신 초상화는 해당 가문이 사당에 모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