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무관은 어떤 처우를 받았나요?
조선시대의 양반은 문관과 무관으로 나뉘잖아요. 그런데 문관들은 벼슬길이 더 열려있는 느낌인데, 무관들은 어땠나요? 월급도 제대로 못받은 무관들이 많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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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무관은 문관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문과 관직은 1779 자리, 무과 관직은 3826 자리였으나, 녹을 받는정직(正職) 관직은 문과가 1430개, 무과는 1069개로 약 78.5%의 무관이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임시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또한, 장군으로 계속 승진하여 정3품 상계(上階) 절충장군이 되면, 비로소 당상관(堂上官)으로 대우 받으며 령공(令公) 또는 영감(令監)으로 불렸고, 승진하여 정2품 자헌대부가 되면 이때부터 대감(大監) 으로 불리며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문관은 11.2%인 200자리
무관은 78.5%나 되는 3005자리가무급 또는
임시직 이었습니다.
무관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참담했으며 고위작도 무관은
1품과 2품 자리가 없었고
군영도 최고 책임자 자리는 문관이 차지했으며, 무관은 공식적으로 양성 기관마저 없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도 성리학 중심의 국가이며 이에 따라서 문신이 더 우대받았으며
더불어서 조선후기에는 무관들은 제대로 월급 등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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