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년) 7월 23일에 구식군대가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 급료연체와 불량미 지급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병란으로 청나라와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민씨정권은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만들면서 구식군대인 훈련도감을 비롯한 군영들을 무위영과 장어영으로 츅소시켰습니다. 여기에 급료도 13개월치나 밀렸는데 1개원분을 지급하면서 불량미를 지급한 것이 화근이 되어 군란이 일어나게 되어 민씨들은 뿔뿔히 흩어지자 흥선대원군이 정치 전면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