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강서세무덤(강서삼묘)를 비롯해 덕흥리벽화무덤(국보유적 제156호), 진파리 7호무덤 등 여러 고구려시기 무덤에 직접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점은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건국시조인 동명왕부터 마지막 보장왕까지 28명의 국왕이 있었다. 고구려왕들은 추모왕(동명왕), 유리왕 등 이름을 딴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장지명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미천왕은 미천원에, 소수림왕은 소수림에 장사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개토왕의 경우도 원래 공식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므로, '국강상(장지명)+광개토경평안(업적)+대왕(태왕)' 형식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때는 광개토왕을 국강상왕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고국곡에 묻힌 8대 신대왕이 '고국곡왕'이 아닌 '신대왕'으로 기록된 것은 광개토왕처럼 왕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킨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