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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박새218
심심한박새21822.09.17

조선시대 양반들은 무엇으로 돈을 벌었죠?

농민들은 자기가 농업을 해서 자급자족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양반들은 일은 딱히 하지는 않잖아요?

땅이 많거나 노예가 많은 양반들은 대신 돈을 벌게 시키면 되지만

양반이라고 다 부자는 아니였을텐데

가난한 양반들은 뭘로 돈을 벌었죠?

체통을 버리고 농업을 햇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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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은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토지가 없고 관직이 없는 양반들은 족보를 팔기도하고 양반신분을 버리고 상업이나 농업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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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차하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중소 지주로서 이미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따라서 소작농을 부려 일을 시켰기 때문에 직접 농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지주이기 때문에 삶이 풍요로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흉년이 들 경우는 양반들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관직에 나간 양반들은 나라의 녹이 주요 수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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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신진사대부가 신흥무인층과 손을 잡고 만든 나라입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중소지주층이었는데 고려말 집권층이 대지주층인 권문세족이었습니다. 고려말 과전법을 단행하면서 조선 건국에 협조한 이들은 나라로부터 과전을 받았습니다. 이 과전이 조선 양반의 경제적 기반이었습니다. 과전에서 나오는 10퍼센트의 세가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조선 건국후 양반들은 현직 관료이던 전직 관료이던 과전을 지급받아 경제생활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과전을 지급할 토지가 부족하자 세조 대에는 직전법을 시행해 현직 관료만 주다 명종 이후에는 녹봉 즉 월급만 주게 됩니다. 양반들은 녹봉말고도 자신의 토지를 갖고 있었으며 노비를 통해 직접 경영하던가 아니면 농민에게 소작을 주었는데 이때 일반적인 소작료는 소출의 반 즉 50퍼센트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이 나타나고, 또 임진와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몰락한 양반들이 다수 나타나 사회적 문제가 되는데 이들은 생업을 위해 농사를 짓거나 해야했습니다. 앙반은 면세혜택이 있어 일반 농민보다 처지가 훨씬 좋았지만 부유한 농민이나 일반 농민보다 열악한 양반들도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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