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18세기 말엽의 조선사회는, 양반사회의 모순이 중첩되어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이 그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민중의 생활이 도탄에 빠져, 새로운 사회질서를 찾던 변혁기의 왕조사회였습니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적 전통(성리학)은 현실의 여러 모순을 극복하기에는 힘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사상과 문물들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이 완고한 현실의 타파를 위한 새로운 운동(실학)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문명의 흐름을 타고 서구의 그리스도교 사상도 들어오게 되었는데, 당시 중국에 보내진 외교사절단을 통하여 {천주실의}, {칠극} 등의 천주교 교리서가 들어와 실학파들과 남인계 소장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지게 되었습니다. 학문적 호기심으로 연구되던 천주학은 천진암과 주어사의 연구모임인 '강학회'를 통해 신앙적 실천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벽, 정약용, 권철신, 권일신 등은 천주교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고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이승훈을 북경에 보내 공부하여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