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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13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복 왕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시대를 감안해 보면 너무 지나친 영토 확장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까지 먼 곳을 원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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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시작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알렉산더의 군사적 성공과 야망

    2. 아시아의 문화와 부 탐구

    3.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복수

    4. 전란 중의 정치적 이슈 해결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알렉산더는 동방으로의 원정을 시작하여 그리스 제국을 세우고 아시아 문화와 그리스 문화를 융합시켰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페르시아의 보복전으로 원정에 나선 알렉산드로스는 아케메네스조를 멸망시켜 보복의 한을 풀어 당초의 출정 목적은 일단 달성하였다. 그러나 아케메네스조가 차지하고 있던 중앙아시아 일대를 정복할 새로운 욕심이 생겨났다. 게다가 다리우스 3세를 시해한 베수스는 페르시아 왕으로 참칭(僭稱)하면서 박트리아를 근거지로 재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알렉산드로스로 하여금 중앙아시아 진출을 서두르게 하였다.


    마침내 기원전 329년 봄에 알렉산드로스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박트리아로 진군하였다. 이때 베수스는 부하 스피다메누스에게 잡혀 원정군에 인도되었으며 원정군은 계속해서 소그디아나로 진격해 수도 마라칸드(현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였다. 원정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르다리야강 유역의 유목민인 사카족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해 북상해, 그곳에 또 하나의 알렉산드리아시를 건설하였다.

    당시 알렉산드로스는 원정군의 침입에 항거하는 소그디아나인 3만 명을 학살하여 소그디아나인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원정군에 환멸을 느낀 스피다메누스는 소그디아나와 박트리아 주민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원정군은 제라프샨강을 따라 전진하면서 스피다메누스를 추적하였다. 스피다메누스와 저항군은 초원의 오지로 퇴각하여 계속 항전하다가 제라프샨강 북안에서 진몰(陣歿)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스피다메누스를 위대한 애국자로 추앙하고 있다. 이 추격전에서 원정군은 12만 명의 현지인을 살해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옛 페르시아 왕의 지배권을 인정했던 지역은 당연히 자신의 제국에 다시 편입되어야 한다는 침탈 논리를 내세워 인도 원정을 결심하였다. 그는 기원전 327년 6월 인도 침공을 위해 중앙아시아를 떠났는데, 박트리아를 중앙아시아와 인도 경략의 요충지로 간주하고 거기에만 1만 3,500명의 수하 원정군을 남겨두었다. 뿐만 아니라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에 12개소의 군사기지를 신설하여 모두 3만 명의 병사와 그리스인들을 주둔시켰다.


    5만의 원정군은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기원전 326년 3월에 탁실라(Taxila)로 진격하였다. 원정군은 주변 세력들과 반목하고 있던 이 지역의 지배자 암비(Ambhi)의 환영을 받으면서 입성하였다. 암비는 환대의 표시로 원정군에게 황소 3천 두와 1만 마리 이상의 양을 선물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10배의 값어치로 답례하고 암비를 그 지방의 지배자로 유임시킴으로써 주민의 환심을 샀다.


    원정군은 계속 남하하다가 포루스(Poros)의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포루스의 병력은 보병 3만 명에 기병 4천 명, 전차 3백 대, 코끼리 200두로 원정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의 대병력이었다. 특히 원정군에게는 처음 대전하는 코끼리 군단이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양군은 히다스페스(젤름)강의 양안에서 대치하다가 원정군이 폭우 속의 야음을 틈타 진영에서 16마일 상류의 강폭이 좁은 곳으로 도하해 배후에서 기습을 가함으로써 격전은 원정군의 승리로 끝났다.

    출처 : 실크로드 사전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은 그리스 문화와 철학을 전파하고자 하는 이상을 펼치고자 하는 목적에 있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는 아버지 필립 2세의 적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그 이상의 영토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믿고, 신의 계시에 따라 세계를 통일하려고 했었다고 하네요.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빕니다.

    즐거운 오후 되시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