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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우람한스컹크18323.07.27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것이 맞나요?

중국의 채륜이 채후지라는 종이를 만들었다고 기록이 있는데 기존의 제지 기술을 개량하고 체계화한 것이 기술을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지않나요? 중국보다 더 오래된 이집트문명에서는 종이에 관한 기록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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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이의 역사를 살펴볼 때 중국에서 발명했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그 이전에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와 가장 흡사한 재료를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종이는 AD 105년 중국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사람이 무엇을 기록하는 재료로서 돌·금속·찰흙 외에 동물의 가죽이나 뼈, 나무껍질·나무·대나무 등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위하여 쓰인 재료들 중에서 오늘날 종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나일강변에 야생하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을 저며서 서로 이어 기록하는 재료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 파피루스는 지금도 나일강변에 많이 야생하는데, 키가 2~3m 이상이며 굵기는 둘레가 10cm 정도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시킨 후, 잘 건조시켜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방법이 고안된 것은 BC 2500년경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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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내 자료에 따르면 종이와 유사한 재료로 가장 오래 된 것은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 나일강가에서 자라던 파피루스(Papyrus)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페이퍼(Paper)의 어원이 된 파피루스는 식물성 섬유를 초지(抄紙)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종이라고 규정짓기는 곤란하고, 중국에서는 서기 105년 후한시대 화제(和帝)때 궁중의 물자 조달 책임자였던 채륜(菜倫)이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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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안경국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니요, 채륜(씨뤼네이션)은 종이를 발명한 사람이 아닙니다. 종이는 실제로 중국의 고대 문화에서 발명되었으며, 그 세부적인 기원과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사실들이 있습니다.


    종이의 발명은 주로 105년경에서 110년경 사이에 신라의 환웅(環雍)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환웅은 중국의 누원(卢文)이라는 인물과 함께 종이를 발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종이의 원료로는 주로 뽀롱뽀롱한 수염을 가진 규투(篋笥)라는 식물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중국에서 종이는 기록, 쓰기, 인쇄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오늘날의 종이 제조 기술과 문화로 이어져왔습니다.


    채륜은 중국의 기원전 2세기 경, 환웅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한 인물로, 현대 중국의 역사에서 소위 세세도 불분명한 시기에 해당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종이를 발명한 사람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채륜은 종이 발명과 무관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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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나라의 환관인 채륜(蔡倫, ?∼121)이 105년에 나무껍질, 삼, 천 조각, 고기

    그물을 가지고 종이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종이는 그의 성을 따서 채후지(蔡侯紙)라고 불렸고, 채륜은 종이를 만들어 바친 공로로 제후책봉되었고, 이 기록을 근거로 채륜이 세계 최초로 종이를

    발명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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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페이퍼라는 말의 어원이 파피루스입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 기원전 800년쯤에 처음 만들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피루스라는 갈대의 일종을 세로로 길게 쪼개서 나일강의 흙탕물에 담근후에 두드려서 넓게 펴서 만드는 방식입니다. 양피지나 나무가 아닌 종이라는 개념의 최초로 봅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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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이의 영어명인 페이퍼(paper)는 파피루스(papyrus)를 어원으로 삼고 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의 나일 강변에서 자생하던 수초(水草)를 뜻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 사람들은 파피루스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다음, 그것을 엮어서 말리고 다시 매끄럽게 하여 원시적인 기록매체를 만들었다.


    이러한 파피루스는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종이와는 다르다. 파피루스는 기본적으로 식물의 껍질을 말린 것에 해당하지만, 중국 종이는 식물섬유를 물에 풀어 체로 걸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파피루스 문서는 대부분 종교문서인데,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넣어두었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가 유명하다. 그밖에 파피루스는 공문, 회계, 의학, 설계도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이래 9세기경까지 기록용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주력 매체가 되지 못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년~기원전 31년)가 파피루스의 유출을 금지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시 이집트의 왕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보다 로마 제국의 페르가뭄 도서관이 더욱 발전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오랫동안 주된 기록매체로 사용한 것은 양피지였다. 양피지를 뜻하는 영어(parchment)와 독일어(Pergament)는 모두 페르가뭄(Pergamus, 현재 터키의 베르가마)을 어원으로 삼고 있다.


    1세기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대(大)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는 ≪자연사(Naturalis Historia)≫ 제13권에서 양피지가 기원전 150년경에 페르가뭄에서 발명되었다고 썼다. 하지만, 양피지는 그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으므로 페르가뭄에서는 이전보다 개량된 양피지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피지는 양이나 송아지의 가죽을 깨끗이 씻은 후 완전히 털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양피지 위에 글을 쓰는 것은 파피루스의 경우보다 더욱 간편한 작업이었다. 또한 파피루스 문서가 두루마리의 형태를 띠었던 반면, 양피지 문서는 바느질로 묶어 오늘날과 같은 책의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양피지는 한 장을 만드는 데 새끼 양 한 마리가 필요할 정도여서 값이 비싸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양피지는 화려한 채색 필사본들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15세기 초에 제작된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는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종이는 고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 종이에 대한 본격적인 기록은 ≪후한서≫의 <채륜전>에 나타나 있다. “예로부터 서책은 대부분 죽간(竹簡)으로 엮었고, 겸백(縑帛, 비단)을 사용한 것을 종이(紙)라고 하였다. 겸백은 비싸고 죽간은 무겁기 때문에 모두 편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채륜(蔡倫)은 종이를 만들 마음이 나서, 수부(樹膚, 나무껍질), 마두(麻頭, 삼베 뭉치), 폐포(蔽布, 헝겊 조각), 어망(魚網) 등을 이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원흥(元興) 원년(105년)에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는 채륜의 재능을 칭찬하였고, 그때부터 모두 종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종이를 ‘채후지(蔡侯紙)’라 불렀다.”

    이러한 기록은 “후한의 채륜이 105년에 종이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정설로 인정되어 오다가 1930년대 이후에 다양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되면서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마지(麻紙, 마를 주성분으로 하는 종이)가 이미 기원전 50년경 혹은 기원전 2세기에 사용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채륜은 종이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마에 여러 가지 식물섬유를 섞어 종이를 새롭게 개량한 인물에 해당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채륜의 기여는 종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종이와 그것의 제작법에 관한 정보를 체계화하고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채륜이 105년에 종이를 개량한 이후에 중국의 제지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마에 이어 닥나무와 뽕나무 등이 종이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수액(樹液)을 첨가하면 벌레가 해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또한 7세기가 되면,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먹을 칠해서 종이 위에 찍어내는 방법, 즉 목판인쇄술도 등장하였다. 제지술과 인쇄술의 발전으로 중국에서는 수많은 서적이 보급될 수 있었는데, 중국은 15세기까지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수의 인쇄된 서적을 보유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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